안녕하세요.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제가 링크를 트위터에 올린 후겠지요... (옛날 동인지 후기식 오프닝)
해가 가는 느낌을 언제부터 받기 시작하나요.
저는 유통기한이 길지 않은 음식들의 기한이 다음 해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슬슬 해가 넘어가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 먹으려고 산 두유의 유통기한이 2024년 04월로 찍혀있지 뭡니까? 정말 깜짝 놀랐어요. 12월까지 왔는데도 영 실감이 안 났는데 훅 들어오더라고요.
아무튼... 올 한해 일어났던 모든 일을 기억해내서 어떤 게 좋았다거나 하는 얘기는 일천한 기억력으로 인해 결국 2개월 정도 안에 봤던 것만 올해로 꼽게 될 것 같고, 못 하려나 싶어서 뜬금없이 인삿글을 적게 됐네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올해였던가...? 언제부터 올해였는지도 영 희미합니다.
요즘 안 좋은 일이 많죠. 2023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열한 논란이 내가 좋아하는 컨텐츠들을 덮치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라고 하는 학살이 일어나고요. 또 용산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바보 같은 소리가 나오고요.
근 3년간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 겹쳐서 괴로웠습니다. 올해에야 슬슬 안정되어 가는데, 그게 거의 정확하게 3년이었던 것 같아서 혹시 삼재인가 하고 찾아봤는데 삼재도 아니었네요.
이 시기 동안은 기대나 희망이라는 건 거의 가지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있다 보면 언젠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인생이 저절로 끝난다거나... 한다는 생각 만으로 막연히 살아갔던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어딘가에 실망하더라도 기대를 갖는 건 나쁜 게 아니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조금씩 나아졌어요. 또, <눈이 부시게>의 수상 소감이며 마지막 나레이션이기도 한데요, 후회 뿐인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오늘을 저버리지 말라는 말이 항상 힘이 됐습니다.
지금도 제가 하는 일이 술술 잘 풀리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스트레스 때문에 이미 고쳤던 안 좋은 습관이 부활했고요, 직장은 옮겼지만 여전히 일은 늘 하기 싫고, 사소한 일상이 피곤해서 짜증이 나는 일도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제가 스스로 나아지고 있다고 진단하는 건 앞날에 대한 기대가 생겼기 때문일 거예요. 모든 일은 결국 바르게 돌아갈 거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옳다 생각하는 것을 위해 노력했던 의미는 없던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에요.
지금 힘든 일을 겪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그게 어느 날 천지개벽 하듯이 좋아지지는 않을지라도 조금씩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연말도 1월 1일도 일년 중 어느 시기, 365일 중 하루이듯이 연도가 변하든 변하지 않든 시간은 계속 가고 있으니까요. 제 두유가 2024년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것처럼...
아직 송년 인사를 하기는 조금 이른 날이지만, 정작 연말이 되면 이런저런 일로 바쁠 것 같아서 미리 안부 전해둡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생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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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나 리스펙해주셔서 올려보는 오늘의 트윗
열 살 때였는데요, 종종 기분이 묘하고 영원히 기억하게 되는 어떤 순간 중 하나였어요.
우리는 엄청나게 빠르게 전진하며 엄청나게 빠르게 회전하는 공에 올라탄 채 일생을 보낸다는 사실을 배운 날, 시간은 해질녘에 밤으로 가던... 어느 초가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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